6화. 아르카 유학생(6)
집으로 돌아간 빌은 매형부터 찾았다. 윈스턴은 평소 퇴근하면 저녁 때까지 자기 서재에서 쉬었다. 빌이 서재로 들어갔을 때 윈스턴은 비비안과 뭔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빌의 존재를 깨달은 비비안이 말을 멈췄다.
"무슨 일이야?"
"방금 학교에서 있었던 일 얘기하려고……."
"그 얘기라면 마침 하고 있었어. 처남도 이리 와."
뒤따라온 아이작이 문을 닫고 빌의 옆에 가 섰다. 둘은 가방도 채 내려놓지 못한 상태였다. 윈스턴은 의자에 기댔던 등을 쭉 폈다. 긴장한 빌이 매형처럼 자세를 바로 했다.
"졸업하면 바로 엘리나로 가. 아이작도 마찬가지야."
"저희만요?"
"형들은 아직 너희를 몰라. 알기 전에 자취를 감추는 게 나을 거야."
"그럼 다른 사람들은요?"
"우리도 이사를 갈 거야. 사람이 적을수록 숨기 좋지."
아이작은 책상에 널린 종이뭉치들을 보았다. 뭔가를 적었다 지웠다 한 흔적이 보였다. 한쪽 구석에 동그라미를 여러 번 친 문장이 있었다. 그게 방금 그들이 한 대화였다. '동생들은 엘리나로 보내고 우리는 이사 하기.'
빌은 반대하는 말을 뭐라도 꺼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쨌든 위협의 실체를 본 이상 반박할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윈스턴 말대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게 누나 부부가 내린 최선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아이작이 반대하고 나섰다.
"저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저는 엘리나로 안 갑니다."
"너도 여기서 산다는 걸 그들이 알아채는 건 시간 문제야."
"알아요. 누나네랑 같이 살겠다는 게 아니에요. 엘리나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만 말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빌은 아이작이 그렇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작이 내릴 법한 결론이기도 했다.
다만 빌은 친구 없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게 조금 두려웠다. 반평생 이상을 함께해온 친구였다. 그 혼자 돌아가면 밀레이 아주머니와 여자애들이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을까?
빌은 문득 그들이 방학 동안 엘리나로 간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달 정도는 거기 있었을 법한데 왜 그랬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방으로 돌아가는 동안, 빌이 말했다.
"야, 그래도 가끔은 와라. 우리 엘리나 안 간 지 꽤 됐어."
"진짜네? 입학 전에는 가 있어야겠다."
"그때만 잠깐 있지 말고. 너희 가족들이 네 얼굴 까먹었겠어."
"알았어. 방학 때는 갈게."
"근데 너 입학이 확정되긴 했냐?"
아이작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 모르겠다고 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빌은 자기도 모르게 대학 원서를 내고 다녔을 아이작의 방 문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빌의 엘리나행은 첩보물 뺨치는 작전으로 진행됐다. 윈스턴과 비비안은 형들을 피하느라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빌은 누군가 있지 않은지 주변을 살폈다. 일단 축제 때 봤던 사람은 없었다. 옆을 보니 드메니아가 아이작에게 꽃다발을 주고 있었다.
학교에서 빠져나와 바로 항구로 향한 빌과 아이작은 가방을 두고 기다리는 로버트 부부를 발견했다. 비비안은 간만에 꽤 차분한 상태였다.
"졸업식 못 가서 미안해. 졸업선물은 다음에 줄게."
"됐어. 몸 조심히 잘 있어. 임신했다고 말도 안 해주고."
"그건 어떻게 알았어?"
"아이작이 알려주더라. 얘는 또 어떻게 알았는지."
아이작이 멋쩍게 미소를 지었다. 셀레네는 빌을 꼭 안았다.
"잘 지내고 가끔 전화해. 네 아버지한테 안부도 전하고. 아이작도 잘 있어."
"네."
"얘는 곧 대학생이라 다시 육지로 온대요. 너 대학은 어디로 간댔지?"
"아르헨."
"거기가 어디야?"
아르헨은 아르카의 수도였다. 레이스탄이 분열된 뒤 3백 년 만에 원래 수도였던 레인에서 좀더 북쪽으로 옮긴 것이 지금의 아르헨이었다. 페올라에서는 거리가 좀 있었다.
비비안은 자기 나라 수도도 모르냐며 한심하다는 듯이 동생을 쳐다봤다. 윈스턴은 아는 사람 하나 없을 지역까지 가는 아이작을 걱정했다.
"멀리도 가네. 혼자 지내도 괜찮겠어?"
"괜찮아요. 기숙사 신청하긴 했어요."
"살 집 정도는 구해줄게."
두 소년은 아이작이 윈스턴의 호의를 세 번쯤 거절한 뒤에야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배가 떠날 시간까지 꽉 채워서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윈스턴과 비비안이 놓아주지 않은 것이었다.
그들이 오른 배는 아르카에서 유일하게 엘리나로 가는 배였다. 그나마도 하루에 두 번만 항해했다. 다음 시간까지는 일곱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에 졸업식을 마치자마자 올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빨리 페올라에서 나가는 게 그들의 목표였다.
빌과 아이작은 그렇게 6년 동안 지냈던 페올라에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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