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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오래오래/레이스타인

카르멘 2. 아르멘탈리 남작가의 하숙생(4)

by 슬기옥 2023. 7. 1.
87화. 아르멘탈리 남작가의 하숙생(4)



 

인원이 한 명 더 늘었다고 식탁이 오랜만에 북적거렸다. 게오르그의 사후 빨간 머리가 식당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글로리아의 옆자리에 앉은 아서를 보니 메리 대부인은 내심 게오르그가 살아있을 적 생각이 났다. 그전에는 상석에 게오르그가 앉았고, 그 옆이 글로리아였다.

 

 

'오늘은 그 반대로군.'

 

 

메리의 희미한 미소를 발견한 실비아가 덩달아 입꼬리를 올렸다. 바이올렛은 자기 건너편에 앉은 익숙하지 않은 존재를 경계했다.

 

 

"글로리아 사촌이라고?"

"아버지 장례식 때 봤잖니."

"그러고 2년이나 얼굴 한번 안 비친 우애 좋은 사촌?"

 

 

바이올렛이 빈정거려도 아서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편지를 제법 주고받긴 했지만, 글로리아와 조지가 시간을 내기 힘들어서 만나기도 어려웠다. 당연히 남작가에 방문할 일도 없었다.

 

그래서 세 모녀는 구성원의 생일에 배달오는 선물을 통해서나 그 존재를 인식할 뿐이었다. 글로리아의 선물 안에는 늘 아서의 단정한 글씨로 쓰인 편지가 동봉되곤 했다.

 

일하면서 목소리가 커진 글로리아가 입을 열었다.

 

 

"어허, 그렇게 고깝게 보진 말고. 내가 바빠서 못 봤던 거니까. 아무튼 오늘은 아서를 정식으로 소개하는 자리니까 기분 좋게 식사합시다. 로레인 백작가 여섯째이자 자넷 고모님의 아들인 아서예요."

"세인트에서 온 아서 하일 로레인입니다. 1년간 남작가에서 신세를 지게 됐어요."

"그래. 편히 있으렴. 카르멘에는 무슨 일로 왔니?"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는 메리에게 아서는 살짝 마음이 열렸다. 실비아와 바이올렛의 인상이 매서웠기에 자연히 그 모친인 메리에 대해서도 선입견이 있었다.

 

 

"교환학생으로요."

 

 

자넷의 아이들 중 유일하게 마력이 발현된 아서를 눈여겨본 어느 교수의 추천으로 왔다는 이야기를 반복한 뒤에야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밀라발트 남학교 10학년 B반 교실, 등교한 카를의 눈에 낯선 학생이 들어왔다. 선명한 붉은 머리카락과 녹색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넌 누구지?"

 

 

무표정으로 책을 응시하던 소년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곧 입가에 미소를 그려냈다. 카를은 어쩐지 그 모습이 소름 끼쳤다.

 

 

"교환학생이야. 1년 정도 있을 예정이고."

"교환학생? 어디서 왔는데?"

 

 

저런 외모면 카르멘의 수도 리엔부르크 바깥 동네나 바다 건너 데이라에서 왔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건 뜻밖의 국가였다.

 

 

"세인트."

"뭐? 거기에 마법사가 있다고?"

 

 

마법사도 아니면서 마법왕국에 공부하러 오는 경우는 잘 없었다. 마법을 기술력으로 구현할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연구원쯤 되는 학생이 대학에 오는 경우는 좀 있지만.

 

 

"마법사라고 하기엔 애매해. 마력이 온전하진 않거든."

 

 

세인트에는 제대로 된 마법 관련 기관이 없으니 공부하기엔 카르멘이 제격이었다. 카를은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자리에 앉았다. 자기도 모르게 그의 붉은 머리카락에 시선을 주면서.


마탑주의 추천서가 학교에 도착한 날을 담임 교사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기에 마법사로 살지 않아왔을 학생의 추천서를 마탑주가 써줬는지. 호세는 문제의 학생이 온 첫날 1년이 빨리 지나가길 어느 때보다 간절히 바랐다.

 

웅성거리던 10학년 B반 학생들은 호세의 등장에 얼른 조용해졌다. 호세는 눈으로 결석자가 없는지 슥 훑고는 입을 열었다.

 

 

"세인트에서 교환학생이 왔어."

"세인트에도 마법사가 있어요?"

"어머니가 카르멘 출신이셔서 조금은 할 줄 안다는구나. 일어나서 자기소개 좀 해 보렴."

 

 

뒤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나니 다들 놀라 휙 돌아보았다. 키가 훤칠한 소년이 구석에서 홀로 빛나고 있었다.

 

반에 누가 있는지 신경도 안 썼던 몇몇은 소스라치게 놀라 움찍 떨었다. 이방인에게 말을 걸었던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거드름을 피웠다.

 

 

"아서 로레인입니다. 1년 동안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