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나 2. 상자에 담긴 것(6)
12화. 상자에 담긴 것(6)
아이작이 섬을 떠난 지 2주가 지났다. 이미 새 학기가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실비아와 바이올렛을 학교에 보낸 메리가 빌의 집으로 왔다. 막 아침상을 치우던 빌이 물기를 바지에 닦으며 문을 열었다.
"어쩐 일이세요?"
"아이작에게 무슨 연락 없었니?"
"아뇨, 없었어요."
그에게서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걱정하는 메리에게 빌은 새 학기라 바쁜 모양이라고 위로했다.
"아니면 편지가 도착하기까지 좀 걸리는 거겠죠."
"거기 기숙사에는 전화가 없다니?"
"있다고 했는데. 시간이 없나봐요."
빌은 아이작이 자주 전화하겠다고 한 걸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작이 빌에게 전화를 걸면 빌이 밀레이가에 안부를 전하는 식으로 소통하기로 했다. 떠나기 전에 적어준 전화번호를 잃어버렸나?
메리가 돌아간 뒤, 빌은 로버트가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체드로였다.
[로버트가입니다.]
"체드로? 저 빌이에요."
[네, 도련님. 건강하게 잘 계세요?]
"혹시 아이작에게 연락 온 거 없어요?"
[아이작 님이요?]
체드로는 누나 가족의 안부도 묻지 않는 빌이 의아한 듯 잠시 머뭇거렸다. 조카가 얼마나 컸는지, 이사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단 말인가?
그는 문득 아이작이 빌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를 떠올렸다. 빌이 혼자서는 유학 절대 안 간다며 데려온 친구라고 들었다. 객식구지만 윈스턴과 비비안은 아이작을 동생과 다름없이 대했다. 주인 부부의 태도 덕분에 체드로 역시 아이작에게 마음을 열었다. 다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빌이 자기 친구 소식을 다른 곳에 묻고 있었다.
[아이작 님은 아르헨으로 가지 않으셨나요?]
"네, 근데 도착했으면 연락을 했을 텐데 여태 소식이 없어서요. 혹시 누나한테는 말했을까 싶어서요."
[저희도 그분 소식은 듣지 못했어요.]
"아…… 고마워요."
빌은 끝까지 누나 가족의 근황을 묻지 않고 통화를 끝냈다. 그는 전화를 끊은 뒤에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전화기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그는 달력을 보았다. 아이작이 떠난 건 9월을 일주일 남겼을 때였다. 엘리나항에서 페올라까지는 파도가 잔잔하면 세 시간이 걸렸다. 페올라에서 아르헨까지 가는 데 기차로 이틀 정도라고 했다. 아르헨역에서 학교까지 마차로 두 시간이었다.
중간에 다른 볼일이 있는 게 아닌 한 이렇게 오래 걸릴 리 없었다. 9월 둘째 주가 끝나가고 있었다.
"다른 볼일?"
그제야 빌은 아이작이 학교 후배를 만나기로 했다는 게 생각났다. 그러나 빌은 드메니아의 연락처를 몰랐다. 어디서 사는지 알 바 아니었다. 그래도 어쩌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빌은 배 시간을 확인하고 대강 짐을 꾸렸다.
오랜만에 찾은 르마나 고등학교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빌은 교복 입은 학생들 틈을 지나갔다. 그가 교사 사무실에 들어오자 깜짝 놀란 사무실 주인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니? 세상에, 너 빌 맞지?"
"오랜만이에요."
그의 담임이었던 세이넬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이넬라는 빌의 양손을 꼭 잡고 흔들었다.
"어머, 얘, 이렇게 보니 반갑다. 뭐하고 지내?"
"일자리를 찾고 있어요."
"그렇구나. 근데 학교는 웬일이야?"
"아이작 기억하세요?"
범생이 아이작을 세이넬라도 기억하고 있었다. 빌과 함께 다니던 그 학생은 수도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 학교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런 우등생은 그녀의 교사생활 14년 중 처음이었다.
"당연하지. 아이작은 왜?"
"제가 걔랑 고향 친구인데 요새 연락이 안 되네요."
"연락이 안 돼? 편지가 늦어지는 게 아닐까?"
"저희 집에 직통 전화가 있어서 굳이 편지를 쓰진 않을 거예요. 학교에도 전화가 있다고 하고."
"그래? 그럼 좀 이상하네."
세이넬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새 학기라고 하지만 대학 신입생이 집에 연락할 시간까지 없진 않을 거라고 그녀가 말했다. 빌이 본론을 꺼낼 차례였다.
"아이작이랑 친한 아이가 있는데, 그 친구를 좀 볼 수 있을까요?"
"누군데?"
"빌리 드메니아라고 들었어요."
드메니아는 지난 학기에 12학년이었던 빌보다 네 살 아래였다. 빌은 세이넬라를 따라 9학년 교사를 찾아 나섰다. 9학년 부장은 알리브레네였다. 빌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살짝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빌리 드메니아를 만나고 싶대요."
"드메니아요? 뭐하러?"
"제 친구와 친했던 후배예요. 친구가 사라지기 전에 그 애를 만난다고 했어요."
알리브레네는 학생 명단을 뒤적거렸다. 명단에는 학생들 이름이 성부터 쓰여 있었다. 성이 '드메니아'인지 '드 메니아'인지 잘 몰라 D와 M에서 찾았다. 알리브레네는 그러고도 한 번 더 명단을 전체적으로 훑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이름은 없어요."
"없어요?"
"혹시 모르니 다른 학년 명단도 보죠."
그는 학생이 유급했거나 학교에 일찍 혹은 늦게 입학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자료를 찾으러 다니던 중 그들은 복도에서 마주친 어느 교사로부터 '빌리 드메니아는 졸업식 이후 전학을 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애는 왜 찾아?"
"졸업생이 드메니아를 만나고 싶어 해요. 친구가 연락이 안 돼서 친했던 사람을 찾는 모양이에요."
"저런, 졸업하고 소식이 끊기는 일이야 흔한데."
"그 애 이번에 앨시어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에요. 이 아이와는 고향 친구고요."
"2주 전까지는 고향에 같이 있었습니다."
드메니아의 근황을 전한 아르카어 교사는 팔짱을 끼며 눈썹을 가운데로 모았다.
"치안대에 신고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들 사이에 차가운 침묵이 자리했다. 어디선가 학생들 웃음소리와 비명이 들려왔다.
명문대 입학이 확정된 모범생이 2주 전까지 같이 있던 친구와 갑자기 연락이 안 되는 건 모교 입장에서도 중대사항이었다. 빌은 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그나마 연고지인 페올라 치안소에 실종신고를 했다.
엘리나행 배가 뜰 때까지는 다섯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배 시간이 되길 기다리며 그는 로버트가로 발길을 옮겼다. 비비안은 갑자기 찾아온 동생을 들여보냈다. 복도 한편에 상자가 몇 개 쌓여 있었다.
"너 여긴 웬일이야?"
"누나, 뭐 얘기 들은 거 없어?"
"체드로가 어제 네가 전화했다던데. 아이작이 왜?"
"모르겠어. 육지에 있는 건 확실할 텐데. 후배를 만난댔으니까 페올라에 있지 않을까 해서 왔어."
아이작의 행방불명은 비비안에게도 근심거리였다. 몇 년을 같이 지내 빌만큼이나 아이작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동생이 친구 때문에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비비안은 쉬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할 것을 권했다. 빌은 애써 기분전환을 위해 조카를 보기로 했다.
셀레네는 여느 때처럼 지낸다고 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남편의 죽음이 그렇게 깊게 다가온 것 같진 않아 보였다고 비비안은 추측했다. 그건 다른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퇴근한 윈스턴은 처남이 자기 딸을 업고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처남은 언제 왔어?"
"안녕하세요. 아까 낮에 왔어요."
태어난 지 3개월 된 엘리아는 삼촌의 등에 업혀 자고 있었다. 아빠에게 옮겨 간 엘리아는 눈을 살짝 떴다가 다시 감았다. 윈스턴이 아이를 안은 채 부엌에 있는 비비안에게 향했다.
"빌이 웬일로 왔대?"
"아이작 찾으러."
"아이작? 연락 안 된다고 한 것 때문에?"
"응, 실종신고 하고 오는 길이래. 저녁에 배 타면 피곤하니까 내일 아침에 가라고 했어."
"대체 무슨 일인지……."
빌은 피로에 지쳐 저녁도 거르고 침실로 들어갔다. 아이작 없이 방문한 로버트가는 왠지 어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