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오래오래/레이스타인

엘리나 4. 물 밖과 물속의 경계(6)

슬기옥 2021. 3. 14. 22:45
25화. 물 밖과 물속의 경계(6)



 

당황한 아이리스가 팔을 허우적거렸다. 레이카는 얼른 그녀를 물 밖으로 꺼냈다. 르발라는 고통스럽게 기침하는 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이냐?"

"공주님께서 정말 육지 인간이 되신 듯합니다."

"송구합니다. 신은 공주님의 지느러미에만 변화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레이카는 얼른 납작 엎드렸다. 아이리스는 코가 매워서 눈물이 다 났다. 살면서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소리 내서 흐느끼고 싶어도 목구멍에서 바람 소리만 나왔다.

 

르발라는 레이카에게 고개를 들도록 했다.

 

 

"네가 옆에서 아이리스를 보필해 다오."

"네, 공주님께서 아퀘이레로 돌아갈 방법을 강구하겠습니다."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아이리스의 충직한 신하이자 가까운 친구인 네가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구나."

 

 

압시엘이 아구스토를 부축했다. 레이카와 아이리스는 아퀘이레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 아이리스의 언니 중 한 명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막냇동생의 별난 지느러미에서 한참이나 시선을 뗄 줄 몰랐다.

 

그렇게 아버지를 뵙고 온 것이 몇 시간 전이었다. 아이리스는 주저앉아서 (레이카가 알려준 바에 의하면) 장딴지를 매만졌다.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장본인이 레이카였다. 그런데 뻔뻔하게도 그가 자신을 보필하겠다고 맹세했다.

 

 

'병 주고 약 주는 거야?'

 

 

육지 인간의 다리를 달아놨으니 걷는 연습은 당연히 그가 도와야 마땅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엘리나의 하늘은 여전히 밝았다. 지리적 특성 상 엘리나의 낮은 육지보다 길었다.

 

기온은 낮았지만 아이리스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녀는 자기 몸에서 물이 나오는 게 놀라웠다. 손끝에 묻은 물을 보던 아이리스에게 레이카가 웃으며 말했다.

 

 

"공주님, 많이 힘들었구나. 땀까지 났네."

 

 

수첩에 적을 준비를 하던 아이리스는 손을 멈췄다. 아퀘이레 말에 '땀'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그곳에서만 쓰는 단어가 있듯 그곳에 없는 단어도 존재했다.

 

아이리스는 자신이 들은 대로 적었다. 아퀘이레에는 없는 단어기에 이상한 말이 되었지만 레이카는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ㄸㅏㅁ? 그게 뭐야?]

 

"음, 열이 나면 나오는 거야. 나도 가끔 날 때 있어."

 

 

안 그래도 정말 몸 안이 뜨겁긴 했다. 레이카도 많이 아는 건 아니었기에 차라리 빌에게 묻는 것이 나을 때도 있었다. 물론 문제는 그와 문자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집 앞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아이리스는 자루를 들고 터벅터벅 걸어오는 빌을 봤다. 빌에게서 생선 비린내가 났다. 엘리나 주민 대다수에게 나는 것이라 빌 자신조차 모를 정도였다.

 

애초에 물 속에서 살았던 아이리스에게 비린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지 물 밖에서 사는 육지 인간에게 그런 냄새가 난다는 게 신기했다.

 

아이리스는 빌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레이카도 그를 발견했다.

 

 

"왜 나와 있어?"

"걷는 연습 좀 했어."

"힘들었겠다. 들어가자. 오늘 고등어 좀 손질한 거 받아 왔어."

 

 

레이카는 아이리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들어가며 힐끗 눈치를 봤다.

 

아퀘이레인은 바다생물을 주식으로 삼긴 했다. 문명을 이루지 못한 생물이 그 대상이었다. 그러나 육지 인간이 그걸 구분할 방법은 없었다.

 

이미 손질된 생선 토막이 누구네 집 자식인지 알 길은 없으니 레이카는 죄책감을 조금 접어두기로 했다. 그는 안드레가 차려준 음식을 먹은 뒤면 자신의 배 속에 들어간 해양생물이 아퀘이레 국민이 아니었길 기도하곤 했다.

 

한낱 시민인 자신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지배계층인 아이리스라면 충격이 더 클지도 몰랐다.

 

빌이 구운 생선을 내왔다. 아이리스는 익힌 생선은 처음이었다. 날것으로만 먹던 그녀에게 뜨거운 고기는 생소했다. 그녀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본 빌이 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입맛에 안 맞으면 남겨도 돼."

 

 

빌은 레이카의 동생인 아이리스에게도 말을 편하게 했다. 아이리스는 포크로 생선을 쿡 찔렀다. 칼로 결을 따라 생선살을 썰던 빌이 아이리스를 쳐다봤다. 레이카는 당황해서 아이리스의 포크를 고쳐 쥐어줬다.

 

 

"포크질이 좀 서툴러."

"그럴 수가 있어? 몇 살인데?"

 

 

아이리스는 당당하게 손가락 두 개를 폈다. 그리고 곧바로 주먹을 쥐었다. 빌은 눈치껏 알아들었다.

 

 

"스무 살?"

 

 

아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빌이 현재 스물두 살이었다. 몇 살 차이나지도 않는데 도구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 이상했다. 레이카가 노련하게 칼질하는 것과 정반대였다.

 

레이카의 존재에 대해서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고향도 불분명하고 아버지조차 그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 그런데다 말도 못 하고 다리도 불편한 여동생을 두고 친한 아저씨를 만나러 갔다고? 아이리스가 유일한 가족이라더니?

 

빌은 묵묵히 식사를 했다. 그러면서도 레이카를 향한 날카로운 눈빛은 거두지 않았다. 레이카는 그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자 밥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