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5. 성 구스타브의 반지(10)
74화. 성 구스타브의 반지(10)
영지 일을 처리하는 조지는 일주일에 한 번은 왕궁으로 불려갔다. 왕실 법도를 익혀야 한다는 명목이었다.
켈리는 조지가 교육받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대대로 왕족을 가르쳐온 교사인 샌더슨 공작은 오늘따라 힘이 들어간 상태로 말하고 있었다.
"세인트에 공작급 귀족 가문은 세 곳이죠. 초기 두 가문에서 어떻게 세 곳이 되었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레이스탄 제국 당시 화이트 공작가와 샌더슨 공작가 사이에 파벌 싸움이 있었고 대부호였던 미에르에서 화이트를 도와 지금의 세인트를 세워 공작위를 받았습니다."
"그럼 화이트 공작가는 계속 공작위를 이었던가요?"
"화이트 공작이 왕이 되면서 공작가는 샌더슨과 미에르 두 가문이었다가…… 세인트와 아르카의 영토 분쟁에서 큰 공적을 세운 엘피아 백작가 차남이 공작위를 받았습니다."
"그 전쟁에서 초대 로레인 백작이 공을 세웠다는 것도 아시겠군요."
"네."
"초대 로레인 백작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 제이드 로레인입니다."
"동생분 성함이 제이드 하일 로레인이고, 초대 백작은 라이언 '구스타브' 제이드 로레인입니다."
자기 조상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된 조지는 빨개진 얼굴로 책만 쳐다보았다. 쩔쩔매는 약혼자를 보던 켈리가 끼어들었다. 공주가 다가오자 조지의 낯빛이 살짝 밝아졌다.
"샌더슨 공작이 오늘따라 조지를 좀 잡는군요."
"공주님의 남편이 되실 분이니 교육은 철저히 해야지요."
"괜찮아, 조지. 귀족들이라고 다 자기 가계도를 외우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공적을 이룬 초대 백작은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네요. 이건 공작 말이 맞아."
켈리는 조지의 어깨를 탁탁 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조지의 안색이 다시 나빠졌다. 그는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많은 공부량에 진이 빠진 모양새였다.
"왕족이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라네."
"영지 일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걸요."
"그럼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지."
"그럴까요? 백작위를 누가 맡으면 좋을지……."
"공주의 남편 자리는 절대 내놓지 않겠다?"
"공주 남편 자리가 탐나는 게 아니라……!"
당황해하는 조지의 표정이 재미있었다. 켈리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샌더슨 공작, 잠깐 자리 좀 비켜 주시겠어요?"
"예, 저하."
샌더슨 공작은 탐탁지 않다는 눈빛으로 조지를 쳐다보면서 나갔다. 둘만 남은 자리에서 켈리는 조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조지는 아까보다 편해진 얼굴로 켈리의 허리를 안았다.
"샌더슨 공작이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자네에게만 이러는가 보군."
"제가 못미더운 것도 당연하죠."
"내가 자네만 한 인재를 본 적이 없는데?"
"공주님 따라가려면 멀었어요."
"원래도 왕족의 배우자에게는 박했다고 하네. 당연히 겪는 과정이니 크게 신경 쓸 거 없어. 못 하겠으면 언제든지 말하고."
"그럼 결혼 못 하잖아요."
켈리는 조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조지가 앉은 상태에서는 팔을 편히 들 수 있었다. 잠시 그를 쳐다보다가 다시 입술을 대려던 켈리는 조지가 어깨를 잡는 바람에 멈췄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한 번 더 그러면 못 참을 것 같아서요. 이따 교육 끝나고 마저 해요."
"가벼운 입맞춤도 안 되나?"
"사소한 불씨가 큰 불꽃을 낸단 말입니다."
켈리는 알겠다는 듯 씩 웃고는 그에게서 몸을 뗐다.
"그래, 이게 있는 한 서두를 건 없으니 말이야."
켈리는 손등을 펴서 내보였다. 그녀의 약지에서 성 구스타브의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내가 이 반지를 빼지 않도록 자네가 열심히 해줘야 해."
"네, 명 받들겠습니다."
"그럼 샌더슨 공작을 다시 부르지."
조지가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에도 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어떤 일에도 절대 빠지지 않을 반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