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2. 아르멘탈리 남작가의 하숙생(6)
89화. 아르멘탈리 남작가의 하숙생(6)
세 사람이 응접실에 들어섰다. 집주인인 글로리아가 상석에 앉자 카를은 자기 지정석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글로리아의 오른편이었다.
단 둘만 있을 때에도 앉는 자리였다. 귀한 손님일수록 안쪽에 앉히는 카르멘의 관습에 따라 카를의 자리나 다름없게 된 지 오래였다.
글로리아의 왼편, 그러니까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아서를 보며 카를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사촌이라고 해도 매일 보다시피 하는 친구만 할까.
하지만 글로리아는 오늘 묘하게 불편한 기색이었다.
"아무튼 아서가 탄 마차를 수상쩍게 여기고 미행했다는 거잖아?"
"오늘 처음 등교한 녀석이 너희 가문 마차를 타면 당연히 수상하지."
"그래 뭐, 몰랐다니 이해할게. 우리 집에 남자가 든 것도 오랜만이니까."
사업차 만난 남자들은 전부 저택 밖에서 본 것이니 안에 들인 건 아서가 오랜만이긴 한 것이다. 카를은 애써 민망함을 감추느라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참 고오맙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둘이 같은 학교라니 좋네."
"아서는 내가 잘 챙길게."
"그래주면 고맙지."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가만 있지 않겠다는 무언의 압박에 카를은 살짝 움츠러들었다. 아서는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삼켰다.
카를이 굳이 말하고 다니지 않아도 아서가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는 이미 학교와 사교계에 퍼졌다. 여자만 사는 저택을 드나드는 수상한 남자를 주시한다는 명목 때문이었다.
그러나 글로리아의 사촌이라는 게 밝혀지자 그를 향한 관심은 곧 식었다. 아서를 눈여겨본 몇몇 영애가 편지를 보내오는 것 외에는.
퇴근한 글로리아의 눈에 띈 수북한 편지 안에 아는 이름이 몇 보였다. 심지어 한 집안에서 자매가 각자 보낸 경우도 있었다. 한 영애가 몇 번이나 보내기도 했다. '앞에 보낸 건 무시해 주세요.' 그게 뭔 줄 알고?
"아니, 이 영애들은 아서를 어디서 봤다고 집으로 편지를 보내?"
"도련님 앞으로 선물을 보낸 분도 계시대요."
하녀에서 시녀로 승급한 안젤라가 옆에서 거들었다. 평민인 그녀가 시녀로 발탁되는 건 귀족사회에서 크나큰 혜택이었다.
아서에게 붙여준 하인 한 명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방금 전까지 저도 같이 선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야."
카르멘이 낯선 아서는 학교와 집 외에는 어딜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등하굣길에 잠복하거나 같은 학교에 다니는 형제로부터 목격담을 듣는 게 아닌 한 아서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아, 정말 귀족 영식들 입을 통해 들어갔나?
문득 글로리아는 아서가 처음 카르멘에 왔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만난 사람이 분명…….
'에르샤펠 영애!'
아서에 관해 떠들고 다닐 사람이 에르샤펠 샤르트망밖에는 없었다. 물증은 없지만 현재로서는 그녀가 가장 유력했다.
"적당히 추려서 전달할 건 전달하도록 하죠."
"전달해도 되긴 할까요?"
"연서가 아닌 것만 읽게 해요. 여기 있는 동안 또래 집단과 섞이는 게 중요하긴 하니까."
"그런 걸 골라내는 게 더 힘들 것 같습니다. 미리 읽어보는 것도 예의는 아니고요."
"그렇긴 하네요."
골머리를 앓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이 시간에 올 만한 손님은 없었다. 편지를 정리하는 하인들 대신 글로리아가 문을 열었다.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