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 3. 수상한 사촌(6)
97화. 수상한 사촌(6)
"아니면 '티나'라고 불러도 돼요. 카를과 균형은 맞춰야죠."
"아,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처음 본 사이에 너무 부담스럽긴 하죠? 하지만 그렇게 불러도 언제든 환영이에요."
친화력이 좋은 건 이 집 내력인가 싶었다. 아서는 글로리아에게 크렌슈타인가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카페까지 가는 동안 알테나는 일부러 마차를 천천히 몰았다. 아서가 약속에 늦을까 안절부절못했다면 모를까, 여유로운 모습을 보니 좀 더 대화를 나눠도 될 것 같았다.
"카를과 만나면 뭘 하나요?"
"주로 과제로 시간을 보내는 편입니다. 저보다는 리아의 친구인지라."
"오늘도 과제 하러 가는 건가요?"
"네, 이번에는 조별과제라 밖에서 보자고 하더군요."
아서 입장에서는 학교 냅두고 굳이 그래야 할까 싶었지만, 카를이 학교는 답답해서 아이디어가 안 나올 것 같다며 끝내 바깥을 고집했다.
어느 정도는 동의했다. 회의실이나 도서관은 외부 자극이 없으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으니까.
"어떤 과제인가요?"
"모의장사입니다. 아직은 기획 단계예요."
"아, 그러면 아르멘탈리 남작의 도움을 좀 받아도 되겠어요."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조언을 요청할 생각은 있습니다."
"아직 어려도 장사 감각은 탁월하니까요."
남에게서 사촌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은 좋았다. 상대방이 아직 좀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는 것만 빼면.
아서는 슬쩍 바깥을 바라보았다. 번화가에 진입한 것 같은데 카페 차오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할까요?"
"음, 거의 다 왔네요. 이대로 보내기 아쉬운데 하나 더 물어봐도 될까요?"
"그럼요."
알테나는 몸을 아서 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은근한 미소를 부채로 가린 상태였다.
"혹시 약혼자는 있어요?"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연회에 파트너 없이 가는 건가요?"
"있어도 리아에게 부탁했을 겁니다. 저 때문에 약혼자도 1년을 여기 있게 하진 않을 것 같네요."
영애들이 주목할 만큼 미인인 데다 거친 카르멘어를 중화하는 부드러운 세인트 억양에 약혼자가 없다는 사실까지. 짧은 시간 이야기를 했을 뿐이지만 그렇게 큰 흠도 없어 보였다.
알테나의 눈웃음이 아서를 주시했다. 아서는 그녀를 쳐다보며 몸을 굳혔다.
"파트너 못 구하면 나한테 말해요. 언제든 괜찮으니."
"영애는 약혼자가 없으십니까?"
"없어요. 운이 좋게도."
거의 성년인 귀족 여성에게 약혼자가 없을 수 있나? 아서가 생각하기에 크렌슈타인 백작가가 그렇게 세력이 작은 집안은 아닌 거 같았다. 알테나의 기만 봐서는 셀빈 후작가와 견줄 정도였다.
본인이 눈이 높은가 보다 하고 아서는 멋쩍게 웃었다. 왠지 입밖으로 내뱉었다간 새쭉 웃은 알테나의 눈매가 삐죽 솟을 것 같아서.
마차가 멈췄다. 아서는 먼저 내려서 알테나의 손을 붙잡았다.
"고마워요."
"저야말로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걸요. 아, 들어가면 카를도 있겠네요."
이 와중에 살뜰하게 동생 얼굴도 보고 가겠다는 의지에 아서는 참 대단한 누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차 많이 나는 형들이라면 모를까, 폴과 쌍둥이로부터는 이 정도의 관심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 장난 칠 때만은 아주 적극적으로 아서와 레오를 찾았더랬다. 어린 레오의 반응이 더 재미있다며 쫓아다니다 대장간 일로 단련된 제이드의 돌덩이 같은 꿀밤을 맞은 뒤로는 자제하는 듯했지만.
카페로 들어선 알테나는 카를이 어디 있는지 알겠다는 듯 걸음을 성큼성큼 옮겼다. 아서는 오히려 위치를 아는 자신이 따라가는 모양새라 당황했다.
별실 쪽으로 가자 희미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별실은 은밀한 대화를 위한 곳이기에 휘장에는 진짜 대화를 가려주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마들렌이라면 이 집만 한 게 없지."
"그 얘기 들으셨어요? 이번 차오 신제품이 발덴산 포도로 만들어졌대요."
이런 식으로 가게 홍보처럼 들리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카페 차오만의 전략이었다. 심각한 얘기를 위해 별실로 가다가 무심코 무엇을 곁들일지 결정하게 만드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
알테나는 얼결에 '발덴산 포도'라고 중얼거리다가 7호실 휘장을 휙 걷었다.
"어머, 이게 누구야?"
알테나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카를의 맞은편에 앉은 남학생 두 명의 굳은 표정이 보였다. 카를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누님은 어쩐 일입니까?"
"네 친구를 우연히 만나서 같이 오는 길이야. 아서 로레인 맞지?"
"네, 맞습니다. 저희끼리 과제 얘기를 좀 하느라고요."
"그래. 여기서 뵈니 반갑네요, 엑시타 영식, 에뜨라티에 영식."
크레뵈와 르블비안테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대체 무슨 얘기를 나눴던 건지.
아서는 알테나의 옆으로 슬그머니 지나가 카를 옆에 앉았다. 알테나는 아서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초면에 너무 친밀한 것 같은데.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아서."
"예, 알테나 영애."
쐐기를 박는 알테나의 발언에 아서는 기꺼이 화답했다. 그 동생이 보는 앞에서 매정하게 말할 수 없으니까. 아서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진 알테나가 말했다.
"오늘 이렇게 영식들을 뵈었으니 이 테이블에서 먹은 건 제가 사도록 하죠."
"아, 아이고, 영광입니다, 영애."
굳어 있던 크레뵈가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카를은 설렁줄을 당기고 투덜거렸다.
"내 주머니나 누님 주머니나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당연히 다르지, 카를. 잔돈은 너 가지렴."
알테나가 10골드 금화 한 개를 놓고 사라지자 카를은 히죽 웃으며 돈을 챙겼다. 이 정도면 카페에서 차를 한 잔씩 마시고 디저트로 조각케이크도 한 개씩 먹기 적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