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내린 아서의 눈에 들어온 것은 호위무사도 없이 홀로 의자에 앉은 큰형이었다. 조지는 아서가 가방을 들고 걸어오는 것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말 없이 마주보고 섰다. 아서는 혼이라도 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는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 마중나와 준 거야? 엄청 고맙네."
"……."
"근데 형 혼자 왔어? 다른 형들은?"
조지는 오른손을 들었다. 형이 한숨을 크게 내쉬는 것을 보던 아서는 기차의 경적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조지는 들었던 손을 동생의 어깨에 내려놓았다. 형의 손아귀에 아서는 태연한 척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미안해."
"뭐가?"
"형 걱정하게 해서."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냐.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지."
조지가 돌아서자 어디선가 수행비서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아서의 짐 가방을 들었다. 아서가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그는 묵묵히 들고 그들보다 살짝 앞서서 갔다.
"그냥 둬. 저게 저 사람 일이야."
"그래도 내가 들 수 있어."
"나는 뭐 안 그랬는 줄 알아? 근데 내가 옮기려고 하면 '부마 전하, 이러시면 제가 공주님께 혼납니다'라고 고집을 부려요. 공주님은 무섭고 나는 안 무섭다 이거지?"
"오해십니다, 전하. 공주님은 전하께서 힘을 쓰시는 것을 염려하신 것뿐입니다."
"힘 쓰는 게 일상인데 갑자기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좀이 쑤셔서 안 돼."
세 사람이 역 밖으로 나오자 그제야 다른 형제가 눈에 띄었다. 항상 북적북적 했지만 오늘은 폴만 나와 있었다. 그래도 형제들을 보자 아서는 뭔가 울컥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폴이 아서의 머리를 콩 때렸다.
"자식아, 우리가 네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알아?"
"잔소리는 이미 큰형이 다 했어. 근데 레오랑 쌍둥이 형들은?"
"레오는 학교 갔고 존은 바쁘고 프레드는 요양 가 있어. 제이드 형은 왜 안 물어봐?"
"둘째 형 군인인 거 빤히 아는데 뭘. 이렇게 보니까 진짜 허전하다."
"그러게. 우린 항상 일곱 명이었잖아."
폴의 말에 조지가 쓴웃음을 지었다. 1년 만에 보는 폴은 얼굴이 그을려 있었다. 방학 때도 없었던 셋째 형이 아서는 조금 낯설기도 했다. 그 어색함을 폴이 풀었다.
"너 그보다 오랜만에 보는 형한테 인사도 없냐?"
"우리 사이에 인사가 필요했나?"
"어쭈. 외국에서 온 애가 선물은 안 사왔어?"
"선물은 동생이 무사히 돌아온 걸로 만족해."
"이게 머리 좀 컸다고 한 마디도 안 지네."
"너는 열 살부터 내 말 듣지도 않았어."
조지의 일침에 폴이 조용해졌다. 아서는 조지와 폴이 마차에 오르는 것을 보며 가방을 올렸다. 마부가 그에게 아는 체를 했다.
"오랜만입니다요, 도련님."
"그러게요. 저 오늘은 옆자리에 앉아서 가면 안 될까요?"
"절대 안 됩니다요. 도련님 다치시면 부마 전하께 혼납니다."
그 말에 조지가 정색했다.
"아, 왜 다들 뭐만 하면 내 핑계야! 옆에 태우세요. 다치든 말든 상관 안 해요."
"네가 마부 자리에 가면 나는 마차 지붕에서 간다."
"그러든가. 난 다이애나랑 호레이스가 얼마나 잘 달리는지 보고 싶단 말이야."
"다이애나랑 뭐?"
"호레이스. 내가 지어줬어."
아서의 천진난만한 대답에 폴이 코웃음쳤다. 조지는 수행비서가 마차 옆에서 눈치만 보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아서에게 얼른 타라는 눈짓을 했다.
"대체 어디서 본 이름들이야?"
"몰라. 그냥 떠올랐어."
"빨리 타기나 해. 집에 좀 가자."
"다음엔 꼭 태워주세요."
아서가 마차에 오르자 수행비서도 탔다. 그가 문을 닫자 곧 출발했다. 출발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폴은 잠들었다. 조지는 폴이 모자로 얼굴을 가리는 것을 보고는 아서에게 물었다.
"힘들진 않았지?"
"응. 외삼촌이 잘해주셨어. 바이올렛 누나랑 리아랑도 잘 지냈고. 외삼촌이 아들로 들어오지 않겠냐고 농담조로 물어보시길래 괜찮다고 했지."
그의 말에 조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서는 분위기가 서먹해지자 화제를 돌렸다.
"나는 장미가 좋아. 그게 다면 모르겠는데 시들면 마음이 아플 정도야."
"그 정도야? 네 머리색이랑 같아서 그런가?"
"그런 이유면 어머니 무덤에 매일 장미를 바쳤겠지. 몰라. 그냥 좋아."
둘의 대화에 폴은 자는 체를 그만두고 모자를 머리에 얹으며 소리쳤다.
"아, 진짜 못 들어주겠네. 범생이들 수다는 집에 가서 떨어. 아서, 넌 언제 그렇게 말이 많아졌냐?"
"아는 사람이 나보고 입 다물고 있으면 오던 운도 돌아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말 많이 할 거야."
"말 너무 많으면 있던 운도 달아난다."
"폴 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아따, 형님, 말 그런 식으로 하시면 섭섭하지."
"저건 대체 어느 동네 말투야?"
조지가 뭐라고 하자 폴은 모자를 꾹 눌렀다.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아서의 장밋빛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데이라편 외전- 레이스탄 왕국력 3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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