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아름다운 사람(3)
세인트에서는 1년에 세 번 축제를 열었다. 하나는 국가 단위로 열렸고 나머지 둘은 지역색이 강했다.
성 구스타브 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2년 전까지는 로레인가에서 후원하기도 했다.
조지는 거리에 설치되기 시작한 여러 장식물과 간판을 본 뒤에야 축제 기간이 왔음을 알아챘다.
"벌써 성 구스타브 안식제 기간인가?"
"성…… 뭐라고?"
"성 구스타브 안식제. 우리 동네 축제야."
그는 그날 이후 축제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건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선대 왕후를 시해한 로레인가의 자손들을 달갑게 여길 사람은 없었다.
"참, 영주님이면 예산 집행하고 수익금 어떻게 쓸지 궁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 있어도 돼?"
"그런 건 직접 지켜보면서 결정하고 싶다네."
"축제 진행하려면 한 달 전부터 일해야 하는데, 영주님 계속 여기 있었잖아."
영주 아들은 이래서 별로야.
켈리는 조지의 의심 어린 눈초리를 피했다. 그녀는 무늬만 영주였지 실질적으로 일한 적이 없었다.
'직접 뭔가를 처리하는 교육은 받은 적이 없으니.'
그의 의심을 피할 변명을 쥐어짜내 보았지만 하나하나가 다 허술했다. 결국 그녀는 묵비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퇴근할 때가 되자 처음 보는 손님이 들어왔다. 평소에 본 적 없는 조지 또래의 소년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선명한 금발이었고 다른 한 명은 키가 훤칠한 옅은 갈색 머리였다.
"사장님, 생크림 크로와상 서른 개 포장이요!"
"인석들아, 그렇게 무식하게 한 가지만 사는 법이 어디 있냐."
카스텔로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조지는 봉투에 크로와상 열 개와 맘모스빵 다섯 개를 담았다. 그 광경을 본 손님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뭐하는 거야? 우리한테 돈 더 받으려고 수작 부리는 거지?"
"이 구성이면 가격은 어차피 똑같아."
"가만, 이거 못 보던 건데."
"오늘 개시한 단호박을 넣은 맘모스야."
"단호박이라니 놀랍네."
손님과 말을 편하게 하는 조지의 모습이 낯선 켈리는 멀뚱멀뚱 서 있었다. 그가 손님을 스스럼 없이 대하는 것을 본 건 소피아 이후 처음이었다. 켈리의 존재를 알아챈 손님이 물었다.
"저 사람은 새 알바야?"
"응, 사람 구할 때까지 있을 거야."
"난 또 네가 잘리고 저 사람 들어오는 줄 알았다."
"맞아. 너 없으면 어제 만든 빵도 공짜로 못 받는단 말이야."
"너희 그것 때문에 우리 가게 오는 거야?"
켈리에 대한 궁금증은 오래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편이 그녀에게는 차라리 반가웠다. 오는 남자 손님마다 그녀에게 수작을 부리지 않고는 못 배기는 듯했으니.
켈리도 손님에게 관심을 끊고 설거지를 하러 들어갔다.
그녀가 물기를 닦고 나올 때까지도 그들은 가게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벌써 다섯 시를 훌쩍 넘겼다. 켈리가 조지에게 눈치를 주자 그제야 대화가 멈췄다.
"아, 마감시간대 사람이 아닌가 봐?"
"응, 나랑 같이 일해. 퇴근도 같이 하고."
"오, 이제 구식제에서 같이 춤출 사람이 생긴 거야?"
'구식제'라는 단어가 귀에 쏙 들어왔다. 조지가 트집을 잡았다.
"말 좀 이상하게 줄이지 마. '성 구스타브 안식제'잖아."
"너무 긴 걸 어떡해."
"학교에서는 다들 '구식제'라고 그래."
"나만 유행에서 뒤쳐지는구만."
조지의 쓸쓸한 말투에도 분위기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키 큰 소년이 카운터에 놓여 있던 봉투를 집었다. 조지는 챙겨둔 빵 봉투를 들고 그들과 문을 나섰다. 켈리는 그의 뒤를 어정쩡하게 따라갔다.
세 사람은 상당히 친해 보였다. 학교를 그만뒀어도 그들과는 관계를 유지해온 것이다.
켈리는 자신이 마음을 터놓고 지낸 사람이 있었나 떠올려 보았다. 그런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하녀와도 잘 대화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자기 사람 하나 없는 성 밖으로 내쳐진 것이다.
아니, 이제 앨리스가 그녀의 수족이 되어 주려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들인가?"
"나 학교 다닐 때 친구. 가끔 이렇게라도 봐."
오랜만에 친구들을 본 조지는 살짝 들떠 보였다. 분명 축제를 그들과 즐기고 싶은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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