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카르멘
75화. 어린 남작(1)
아르멘탈리 남작가에 또 다시 사망자가 나왔다. 자넷 아르멘탈리의 죽음 이후 4년 만이었다.
장례를 치르기 전, 글로리아는 남작의 집무실 소파에 집사장과 마주보고 앉았다. 집사장 옆에는 변호인이 있었다.
"남작님의 유언장을 일단 아가씨께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유언장……."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었건만 일찌감치 자신의 죽음을 예상했다는 증거였다. 글로리아는 자기 아버지의 사인을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알았다.
변호인이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봉투에는 공증서와 유언장이 들어 있었다.
[나 게오르그 아셸만 아르멘탈리는 남작위(소유 범위: 저택, 영지)와 아르민 상단주 자격 및 권한 일체를 글로리아 리엘 아르멘탈리에게 승계한다.
메리 아르멘탈리에게는 아르민 상단을 제외한 재산의 절반을 상속하고 상단 운영에 관한 권리를 부여한다.
……
레이스탄력 391년 3월 29일 게오르그 아셸만 아르멘탈리]
아버지의 필체와 도장이 맞았다. 글로리아는 울음을 삼키며 유언장을 읽어내려갔다. 다 읽고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3년 전이면 언제부터 아프셨던 거예요?"
"죄송합니다. 아가씨께는 철저히 비밀로 부치라고 하셔서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글로리아는 유언장을 놓고 눈물을 흘렸다. 집사장은 얼굴이 빨개진 그녀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나 아버지한테 관심이 없었나 싶었다. 다른 가족들도, 사용인들도 몰랐을까?
그녀가 집안 사람들 중 유일한 적장녀이긴 했다. 그러나 글로리아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저는 이제 열네 살이에요. 가주의 자리를 잇기엔…… 어머니도 계시고요."
"생전 남작님의 뜻입니다. 부디 아가씨께서 이 유지를 이으셔야 합니다."
이럴 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뭐부터 해야 하는지, 장례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집안의 어른이라곤 메리뿐이었다.
그나마도 메리는 아르카 출신이었다. 아무리 이곳의 문화에 적응했다지만 현지인만큼 익숙하진 않을 터였다.
심지어 상단을 제외한 재산의 절반을 받는 정도였다. 그녀가 상단 일에 도움이 되어주긴 할까?
메리는 2년 전 두 딸을 데리고 온 하녀였다. 그러다 게오르그의 유언장이 작성되기 며칠 전 아르멘탈리가의 일원이 되었다. 그녀가 들어온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라 글로리아도 많이 의아했다.
혼자 남겨질 딸을 위해 가족을 만들어준 것이었나? 아버지는 어린 딸이 집안일을 잘 꾸려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나?
"조지 오빠에게 물어볼까요?"
"어느 정도 참고는 될 것 같습니다만, 지위가 지위인지라……."
"일단 편지를 보내긴 해야겠어요."
친척 중에 부모의 이른 죽음으로 작위를 이은 가문이 있긴 했다. 세인트의 로레인 백작가는 2년 전 역모 누명을 벗어 지위를 되찾았다.
현재 로레인 백작은 조지였다. 그는 임신한 공주의 태교를 도우며 가문의 일도 맡고 있었다. 편지만으로 도움을 받기 부족할 테지만 그가 카르멘으로 오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일단 집사장이 좀 도와줘요. 아버지 옆에서 많이 봤을 거잖아요."
"네, 선대 가주가 사망하면 장례를 치른 뒤 후계자가 작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집사장 르벤은 선대 남작과 30년간 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늘 침착함을 유지했다. 침착한 상태인 건 변호인도 마찬가지였다.
"유언장의 효력은 남작님의 사망 직후부터 발효됩니다. 우선 장례부터 치르고 작위를 받은 뒤 유언장을 공개하겠습니다."
"장례식 중에 공개하면 안 되나요?"
"유언장대로라면 남작부인과 아가씨들의 반발이 클 겁니다. 아가씨께서 작위를 받으신 뒤라면 그 때문에라도 저항은 덜할 테니까요."
글로리아의 어깨가 무거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버지가 공부를 시킬 때 열심히 할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자신의 미래와 남겨질 딸을 예상하고 가르친 것이었다. 글로리아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선대 남작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야겠어요."
"장의사에게 연통을 넣겠습니다."
"급작스러운 사항인 만큼 절차는 간소화하고 바로 작위를 이을게요."
집무실에서 나간 글로리아는 그녀를 담당하는 하녀들에게 향했다. 사용인들은 남작이 사망하면서 자기 구역에 머무르고 있었다.
"모두 상복으로 갈아입도록 해라. 장례는 짧게 치르고 바로 작위를 받을 것이니 드레스를 너무 화려하지 않은 걸로 준비해주렴."
"네, 아가씨."
작위를 바로 받는다는 말에는 다들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르벤과 비슷한 연배인 하녀장 이반나 역시 놀란 얼굴이었다.
"장례 후에 작위를 받으신다고요?"
"이제부터는 내가 아르멘탈리 남작이에요."
글로리아는 힘 있는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 잠시의 침묵이 어색했던 그녀가 한 마디 덧붙였다.
"작위를 받으면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선대 남작님의 뜻이라면 아가씨가 아르멘탈리 남작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아요."
이반나가 글로리아의 양손을 꼭 잡았다. 그녀는 보모처럼 늘 함께해온 사람이었다. 글로리아는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고마워요, 이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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